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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공간주안 리뷰어 13기] 세 번째 살인
작성자 신선우 등록일 2018.01.04 조회수 543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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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모든 작품을 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본 그의 작품들을 전부 좋아하는 편이다. 비록 그의 최근작인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태풍이 지나가고>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내가 본 그의 영화 중 ‘가장 최근작’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무척이나 인상깊게 봤었고 기억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품은 작품이자 내용과 형식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탁월한 작품 <원더풀 라이프>, 흡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해 인물들의 고통과 슬픔이 피부로 느껴지던 <아무도 모른다>, 그 옛날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는 듯한 경외심까지 들게 만들 정도의 걸작 <걸어도 걸어도> 등을 연출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숱한 수작과 걸작들을 배출해냈던 감독으로 내 마음 속에 자리잡아 있었다.

 아직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태풍이 지나가고>를 보지는 못해서 함부로 언급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이 두 작품은 이야기만 보았을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동안 만들어왔던 소위 말하는 ‘따뜻한’ 이야기의 영화인 것 같아 보였고, 물론 그의 영화라 당연히 좋을 것 같았지만 새로운 느낌을 덜할 것 같아 챙겨 보지 못했다고 이렇게 핑계 아닌 핑계를 남긴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신작 <세 번째 살인>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단지 ‘따뜻한’ 이야기를 잘 다루는 감독이 아니라 그냥 영화라는 예술작품을 잘 만드는 감독이라는 걸 내게 다시 한번 새롭게 인식시켜주는 예시가 되었다.

 재판에서의 승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 분)는 살인죄로 30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후 또다시 살인용의자가 된 미스미(야쿠쇼 코지 분)의 변호를 맡게 된다. 미스미는 순순히 범행을 인정하고 있었고 그의 구형량을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낮추고자 사건에 대해 조사하던 시게모리는 미스미가 피살자의 딸 사키에(히로세 스즈 분)와 친하게 지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에 얽힌 일련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한편 판결 직전 미스미가 기존의 진술을 번복하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시게모리는 또다른 혼란에 빠지게 된다.

 

 기존의 작품들이 비교적 따뜻한 무드로 진행된 반면, 이번 작품은 한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혼란에 대해 그려냈는데 이 영화를 통해 내가 새롭게 깨달은 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단순히 깔끔하게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데에도 무척이나 뛰어난 예술가라는 점이다. 얼핏 보면 이 영화는 한 살인사건의 진실의 기저에 숨겨진 복잡한 관계와 사연을 차분한 필치로 그려낸 드라마로만 읽을 수 있겠지만 영화 내용 외적인 면을 보았을 때 영화는 보는 관객을 끌어들여 끊임없이 (결과적으론 의미없을지라도)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극중 시게모리의 딸이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걸리는 곤경(?)에 처할 때, 변호사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 곤경에서 빠져 나올때와 비슷한 연령의 시기를 사키에는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끔찍한 일을 당하며 보내야 했다. 젊은 시절 살인죄로 감옥에 가야했던 미스미는 그 때문에 (당시에)어린 딸을 돌보지 못한 죄책감을 평생 갖고 살게 되었는데 이 때문인지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키에를 도와준다.

 우여곡절 끝에 재판은 (이전까지의 진술을 번복하고)무죄를 주장한 미스미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 끝나게 된다. 증인으로 나온 사키에는 재판 직전 시게모리의 가이드라인(?)을 듣고 나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미스미 역시 막판에 진술을 번복함으로써 진실을 묻으려한다. 대체 왜 다들 이러는 걸까. 영화의 결론 역시 뭔가 확실하지 못하고 모호하다. 미스미와 시게모리의 일련의 대화를 보여주고 사거리에 홀로 서 있는 시게모리를 부감으로 비춰주고 끝내는 이 영화의 종결법은 관객의 마음에 ‘무엇이 왜, 어떻게 된 것일까’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극중 시게모리와 동료 변호사들이 사무실에서 대화하는 장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래도,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은 없는 거겠죠?” 그러나 마지막으로 시게모리와 만난 미스미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이 있어요.” 그건 딸에게 인간 이하의 행위를 가한 사키에의 아버지를 향한 말이자 동시에 자기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내게)이유야 어쨌든 자신은 두 번이나 살인을 지른 사람이고 스스로를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이라 여기며, 감옥에 수감된 때문에 돌보지 못한 딸에 대한 죄책감이 복합적으로 묻어나는 말로 들리기까지 했다. 30년전 살인을 저지르고 또다시 한 사람을 죽이게 된 그는 이제 자기 자신을 ‘죽임’으로써 ‘세 번째 살인’을 저지르려 하는 것이다. 

 

 

 시게모리는 미스미가 무죄를 주장함으로써 사키에가 본인의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증언할 필요없게 만들어주는 배려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스미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저 “그건 좋은 얘기네요”라고 할뿐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렇게 ‘좋을’수 없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에게 자신만의 단죄를 내린거라 보인다.

재판장에서 사형 선고 직후에 미스미는 시게모리와 진한 악수를 나눈다. 시게모리가 미스미의 그 손을 과연 잊을 수 있을까. 또 이 얽히고 설킨 관계와 사연들을 본 우리는 어떤 이야기고 무엇을 말하는 영화인지 완전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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