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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공간주안 리뷰어 14기] 120BPM
작성자 한명화 등록일 2018.04.26 조회수 37

<120BPM> 을 보았습니다. bpm 은 beat per minute의 약자로 보통 음악의 속도를 말할 때 쓰입니다. 일반 발라드나 가요가 70~90bpm 언저리에 있는걸 보면, 사실 120은 굉장히 큰 숫자입니다. 그만큼 빠르다는 뜻이죠.
 
지난 <언노운 걸>에서도 말한 적 있지만, 프랑스는 '자유와 박애, 평등'을 외치고 있는 것 같아 보인 나라 중 하나입니다. 굳이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자면, 이면에 숨겨진 모습을 보면 '자국어 사랑'이라는 말로 가려진 제국주의의 흔적과 프렌치 시크로 대표되는 여성에 대한 차별, 난민에 대한 이중적 태도 등을 가진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번 120bpm 또한, [액트 업-파리]에 대한 전기영화인 동시에 프랑스의 어두운 얼굴에 던지는 돌입니다.
 
후천석 면역 결핍증, 흔히 에이즈라 불리는 질병은 인간이 HVI라는 면역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인체 면혁력이 저하되고 이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성접촉을 통해 흔히 감염되기 때문에 성매매나, 항문성교 등을 통해서 많이 전염되곤 합니다. 1930년대 초에 양성바이러스인 유인원면역결핍바이러스(SIV)가 사람에게 감염되면서 HIV 바이러스로 진화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어떤 정신나간 남자가 유인원과 섹스하는 바람에 인간으로 넘어와 시작된 질병이에요. 하지면 현대에서는 맞는 약을 복용하고 규칙적으로 진료를 받으며 치료하면, 다른 건강한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에이즈 환자들이 그렇게 다른 건강한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하기까지 어떤 투쟁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아마도 포스터만 보고 들어가시면, 깜박 속았다고 생각하게 될 만큼 분위기가 달라요. 120bpm은 198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딱 이 배경의 2년 전, 1987년에 아지도티미딘이라는 항HIV 약제가 처음 개발되었습니다. 하지만 약제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 된다는 치명적 약점으로 복용할 수록 오히려 합병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약이었죠. 그리고 이후 꾸준한 연구를 통해 1996년도에 이르러서야 항HIV 약제를 동시에 3가지를 투여하는 3제 병합요법으로 내성없이 HIV바이러스를 지속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새로운 질병이 발견되었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해서 치료약을 개발했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수월했다면 액트업의 활동은 필요 없었겠죠. 사실 에이즈는 성매매를 통해 가장 많이 전염되기 때문에 감염 경로를 살펴보면 과반 이상이 이성성교 입니다. 하지만 편견은 형편없이 "게이들이 에이즈를 퍼뜨린다. 에이즈는 게이의 병이다."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액트업 파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그런 편견을 부수고 국가와 기업에게 질병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기 위한 단체였습니다. 한창 그 때 에이즈가 퍼지고 있었거든요. 영화 안에서는, 그들의 단체 활동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미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는 물론이거니와 비감염자, 헤테로섹슈얼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공동으로 꾸려가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는 좌충우돌할 수 밖에 없는 곳. 아마 명확하게 알려주진 않았지만 다른 지향성의 퀴어나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었겠지요. 액트업 파리는, 그냥 에이즈라는 질병에 걸린 사람들의 행패가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그 활동이 비난을 받고 아주 울퉁불퉁한 길이어도 '옳기 때문에' 걸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흐름은 크게 새롭게 단체에 가입한 '나톤'과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션'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약간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되어있는 영화인데요, 션은 이미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고, 앞서 말한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내성으로 인해 합병증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션의 열정적인 활동은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한 공동의 대처인 동시에 자신의 생존을 위한 절박함의 발로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그걸 바라보는 나톤은 션의 열정에 매료됩니다. 처음에는 조용하게 회의에 나와 눈치를 보는 것에 그쳤던 나톤이, 직접 콘돔을 나눠주며 단체의 목표를 위해 실천하게 된 것은 션의 영향이겠지요. 아마 나톤이 아니었더라도 그런 (어떻게 보면)선구자들의 열정은 누군가 불씨를 가진 사람에게 산소를 불어넣어 활활 타오르게 하는 역할을 했을겁니다. 

나톤과 션은 사랑에 빠지고 죽을 때 까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이 최선에는 둘의 개인적인 감정과 함께 액트업의 활동도 포함되어 있었죠. 새로운 약을 개발한 기업이, 자신들의 값을 높인다는 이유 만으로 약의 발표와 보급을 미루고 있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이익이 최선이겠습니다만, 현대 사회는 UN인권선언 이후 UN가입국의 모든 국가들은 헌법의 최상단에 인권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본적인 질병에 대한 생명권은, 당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권을 최우선으로 하고, 경제는 완전한 자유경제시장이 아니라는 사회적 합의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결정을 한 기업은 정말 매정하죠. 
 
사실상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냉담합니다. 퀴어라는 편견과 뒤섞여 '자기네가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에이즈는 이성애관계를 통해서 더 많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은 감춰진 채로, 죽어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살리기 위해 가장 최전방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액트 업 파리가 너무 파격적이고, 어쩔 때는 폭력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서프러제트가 그러했듯, 이 세상의 구조는 기득권층이 만들어놓은 구조입니다. 이걸 새로 구성하기 위해서 사회적 약자들이 아무리 평화롭게 부탁해봤자 소용없는건 우리 모두가 알고있는 사실이잖아요. 무엇으로든 시선을 끌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압박하는 것은 그래서 필요했을 겁니다.
 
1990년대 후반에서야 에이즈의 치료법이 나왔기 때문에, '션'은 결국 합병증으로 사망합니다. 누구보다 앞서서 목소리를 높였던 션의 죽음은 액트업의 모든 멤버들에게 공포와, 슬픔과, 어쩌면 절망까지 주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끝까지 션의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함께했던 나톤은 알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트업 파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요.
 
저는 항상 어떤 사회적 문제에 맞딱뜨렸을 때, 최전방에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저는 기껏해야 후원금을 보내고, SNS로 연대와 지지를 보내고, 그들이 주최하는 행사나 집회에 참여할 뿐이니까요. 누군가는 그 '정의'를 위해 최전방에서,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하며,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타났을 때, 그걸 누리는 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죠.

단적으로 이 영화에서조차 액트업 파리의 노력으로 약의 보급이 빨라졌으니 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환자들이나, 미래의 환자들까지 모두 덕을 보니까요. (이 미래까지는 영화에서 나오진 않지만,)
 
그래서 저는 항상 그 빚의 무게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전방의 그대들에게, 응원과 연대를 보냅니다. 그게 사회의 비난을 받더라도, 험난한 길일지라도 "옳기 때문에" 가야만 한다면, 저는 결단코 그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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