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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공간주안 리뷰어 15기] 나의 마지막 수트
작성자 김보미 등록일 2018.09.28 조회수 155

 

<나의 마지막 수트(The Last Suit), 2017>

 

 

 나치의 반유대주의 선전영화 Jud Süß(유대인 쥐스)’가 제작되고 나의 마지막 수트가 상영되기까지 70여 년이 흘렀습니다. 유대인 아브라함이 고향 폴란드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까지도 70년이 걸렸고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그는 아르헨티나로 망명한 뒤에도 폴란드를 입에 담기조차 고통스러워합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자만 꺼내도 눈에 띄게 불편해하지요. 아직까지 그에게 고국은 자신의 가족과 행복을 앗아간 고통스러운 상흔의 터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날, 돌연 유럽행 편도 티켓을 끊습니다. 종착지는 놀랍게도 폴란드 로츠. 영화는 전쟁 중 자신을 구해준 친구에게, 오래되어 더욱 선명한 약속이 담긴 수트를 전해주러 길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모습으로 도입부를 시작합니다.

 

폴란드로 향하는 여정에서 아브라함은 한 가지 환상을 보게 됩니다. 기차를 타고 독일을 지나던 그는 나치 군인들에 의해 수용소로 끌려가던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는데요. 현대식 기차 한 켠에 자리 잡은 나치 군인들은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어 현재의 아브라함을 위협해옵니다. 아이를 겁주는 듯한 군인의 대사는 분명 과거의 어린 아브라함을 향한 것이었지만, 70년이 지난 현재의 아브라함 또한 이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게 됩니다. 급기야 아브라함은 환상으로 인해 패닉에 빠지고, 결국 의식을 잃으면서 생명이 위태로워지는데요. 감독이 연출에 가장 애를 먹었다던 이 기차 시퀀스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 전쟁 트라우마를 조명했습니다. 7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아브라함을 좀먹고 생명까지 앗아갈 뻔 한 그의 트라우마는,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 지독한 굴레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게 해줍니다.

 

작품 초중반 왕복티켓이 없는 아브라함이 입국을 거부당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폴란드 방문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고 심사관에게 비웃음까지 사게 되는 장면인데요. 이 때 아브라함이 굳은 표정으로 묻습니다. 당신이 유대인의 역사를 아는가? 바로 그 순간 공항건물 밖으로 비행기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이륙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하나하나 풀어낼 때마다 비행기의 엔진 소리 또한 커지고 가까워지는데요. 곧 우리는 여객기 한 대의 일상적인 이륙 소음에서 2차대전 당시 폴란드 상공을 날았던 폭격기의 엔진소리를 겹쳐듣게 됩니다. 생존자의 증언과 절묘하게 얽힌 그 소음은 스크린 밖 관객들로 하여금 학살 현장의 복판에 있는 것과 같은 공포감을 심어주는데요. 긴장감 넘치는 효과음이나 사운드 트랙 없이 그 참혹한 역사를 담담하게, 그러나 효과적으로 서술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 파블로 솔라즈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영화에 담았습니다. 그 자신도 유대인인 솔라즈는 고국을 입에 담기조차 어려워했던 제 할아버지의 모습에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는데요. 그 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전쟁과 유대인에 관련된 일화를 수집하던 그는 어느 날 카페에서 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2차대전 때 자신을 구해준 은인을 찾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 말년의 노인, 그리고 포기하려던 순간 기적적으로 재회한 두 사람의 이야기. 감독은 자신의 할아버지와 이름 모를 노인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아브라함을 창조해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가 외면해왔던 아픈 역사를 당당히 마주하고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주길 당부합니다.

아브라함의 여정은 수트가 주인의 품에 안겨지면서 막을 내립니다. 상실과 후회로 둘러쌓인 인물이 보여준 화해와 용서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지요.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브라함들에게는 그의 용기와 결단력이 적지 않은 격려가 되었음을 확신합니다. 홀로코스트와 트라우마라는 어두운 소재를 어둡지만은 않은 노인의 발자취로 고백한 영화나의 마지막 수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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