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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공간주안 리뷰어 15기] 체실 비치에서
작성자 김보미 등록일 2018.10.25 조회수 51


 

<체실 비치에서(On Chesil Beach), 2017>

 

       

-연애와 사랑의 차이

 

  비관적으로 들리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미화된 것 중 하나가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에는 어느 정도 동의할 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혈연간의 헌신적인 사랑 말고, 이성 또는 동성 연인간의 그것 말이에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사랑들은 대부분 짧고 강렬한, 또는 성애적인 사랑입니다.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대다수가 ‘Love conquers all’이라는 주제로 귀결되고요. 다시 말해 미디어의 사랑은 그것의 낭만성에만 집중합니다.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연인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이나 성적 어색함, 차이에서 비롯된 몰이해 등은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연애 초기의 이끌림을 조명할지언정 굳이 후반의 권태를 묘사하지는 않는 것 처럼요. 그렇기에 사랑은 미디어와 우리의 길들여진 의식에 기대어 미화를 거치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아름다워졌고, 이에 사랑 절대시하기또한 비중 있는 클리셰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나 영화 체실 비치에서의 사랑은 조금 다릅니다. 작품은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굳이 그들의 결혼식 장면은 배제합니다. 대신 어색하고 불편한 긴장이 감도는 저녁식사 장면으로 시작해요. 이제 막 부부가 된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에게선 서로를 향한 애정보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더욱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플래시백이 시작되는데, 행복했던 과거 회상 장면에서는 항상 경쾌한 배경음이 흐르는 반면 현재 시점에서는 오직 적막만이 둘을 짓누릅니다. 식기가 어색하게 부딪히고, 어딘지 불쾌해 보이는 플로렌스의 표정은 굳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어도 곧 다가올 파국을 예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에도 에드워드는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참지 않고, 플로렌스는 그의 주의를 돌려보려 애쓰나 결국엔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관계를 이어나갑니다. 이 때 플로렌스의 경직된 몸짓과 교차 편집되는, 과거 역겨운 표정으로 섹스 매뉴얼을 읽던 그녀의 모습은 보는 이마저 거부감이 들게 할 정도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불안정한 교합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절정에 다다른 에드워드의 반응과 몸에 남은 정사의 흔적에 패닉이 온 플로렌스는 소리를 지르며 방을 뛰쳐나갑니다.

 

플로렌스가 섹스에 트라우마적 반응을 보인 이유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기억 때문입니다. 그러나 60년대 영국의 보수적인 사랑관은 그녀로 하여금 침묵하기만을 강요했겠지요. 끝내 그녀는 자신을 찾아 체실 비치까지 내려온 에드워드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합니다. 대신 파격적인 제안을 하지요. 자신은 그를 성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으니, 다른 여자와 몸을 섞더라도 관여하지 않겠다고 설득합니다. 이에 에드워드는 광분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숨겨온 플로렌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악에 받친 말로 플로렌스를 모욕하지요. 이후 해변의 종단면을 배경으로 한 롱 쇼트에서 플로렌스는 천천히 에드워드에게 다가갑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에서 결국 에드워드는 그녀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림으로써, 끝내 관계의 종막을 선언하게 됩니다.

 

화면이 전환되고 영화는 13년 뒤의 에드워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역사학자가 되는 대신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게 된 그는 말수가 없고 무감각해 보이는 중년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장난스러운 말로 수다를 떠는 게 그의 매력이라던 플로렌스의 목소리는 고장 난 레코드 소리마냥 희미해진 상태였지요. 그러던 그의 앞에 뜻밖의 인물이 나타납니다. 어머니를 위한 레코드를 사러 온 10살 남짓의 소녀, 에드워드는 아이가 고른 노래의 제목을 보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고는 거의 직감적으로 아이의 이름을 물어보지요. 소녀의 이름은 클로이’, 바로 플로렌스가 자신들에게 딸이 생기면 붙이겠다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들고 있던 악기가방을 통해 그녀가 같은 합주단에 속해있던 찰스라는 남자와 결혼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때 에드워드는 해묵은 배신감을 느끼는 대신, 자신이 플로렌스를 사랑한 만큼 그녀의 사랑 또한 진실 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맺어지지 못한 사랑을 추억하는 것만큼 그 감정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보여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겠죠. ‘클로이라는 이름을 듣고 안심하는 듯한 에드워드의 미소에는 플로렌스에게 준 상처에 대한 후회와, 자신의 사랑이 무가치한 것이 아니었다는 안도가 함께 담겨있었습니다.

 

연애에는 사랑이 주를 이루지만, 사랑에는 상처와 희생이 주를 이룹니다. 그렇기에 상처 없는 사랑을 바랬던 에드워드의 격정은 미성숙했고, 희생함으로써 사랑하려한 플로렌스의 용기는 성숙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체실 비치에서 이별하는 둘의 장면이 다시 스크린을 채우는데요. 이 때 플로렌스가 이전에는 없었던, 혹은 생략된 대사를 합니다. ‘그만 돌아가자. 둘이 함께.’ 그러나 에드워드는 이전과 같이 그녀를 외면합니다. 와이드 샷,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을 오랫동안 그려내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잔잔한 원작과 달리 필요이상으로 극적이었던 둘의 재회 장면과, 세세한 감정묘사가 주를 이루는 원작의 매력이 영상물의 특성상 대폭 반감된 점을 제외하면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시얼샤 로넌과 빌리 하울의 연기가 작품의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음은 꼭 언급해야겠어요. 그러나 영화가 무엇을 함의하고 어떠한 주제를 전달하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연인도, 이런 사랑도 있음을 보여준 것 자체가, 성적인 또는 낭만적인 사랑에만 집중하는 현대의식에 고한 체실 비치에서만의 의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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