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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공간주안 리뷰어 16기] #2 러브리스
작성자 신유진 등록일 2019.04.29 조회수 85

영화공간주안 두 번째 리뷰. 러브리스

[스포가 있습니다.]

 


 

 

나무가 바라보는, 세상의 황폐한 민낯

 

러브리스는 제목 그대로 서늘한 영화로 사랑이 없는 한 가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러시아의 겨울, 그 추운 날씨와 영화의 정서적 온도가 비례한다. 영화는 사랑 없는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가 인간의 온기를 상실한 곳의 쓸쓸함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한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말하는 것조차 무색할 정도인 보리스와 제냐의 관계는 물론, 부모와 아들인 알로샤와의 관계 역시 사랑이 배제된 건 마찬가지다. 뒤틀린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던 제냐의 집안 환경, 답답한 성격의 보리스를 더 옭아매는 기독교 근본주의적 회사 분위기.(어떤 사상을 추구하는 모든 집단은 그 자체로 배타적이다.) 두 사람이 만나는 애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설레고 열정적인 사랑을 나눴지만, 결국 이혼 전 단계와 별다를 게 없다. 처음부터 알로샤에 대한 내용을 풀지 않았던 영화는, 알로샤를 찾는 과정에서도 사라진 아이가 아닌 그 외적인 요소들에 집중한다. 경찰은 실종된 아들을 찾는 사건에 시큰둥하고, 민간구호단체는 스스로 설정한 범위 안에서만 행동한다.

 “저희는 죽은 사람은 찾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아이의 심정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관객을 철저히 러브리스 상태로 만들어놓는다.

 아이는 숨어 오열하지만, 어른들은 해오던 방식대로 계속 살아갈 것이다.

 

한 폭의 풍경화, 명화 같은 구도와 색채가 기억 남는다. 사랑 없는 세계를 세밀하게 그려낸 묘사도 인상적이다. 보리스와 제냐의 어긋난 관계를 가상의 수직-수평선에 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출근하는 보리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면, 제냐는 지하철을 타고 옆으로 이동한다. 알료사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제냐가 보리스에게 전화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 역시 보리스와 어긋난 방향이다. 여기서 각자 들고 있는 핸드폰도 다른 제품(보리스-삼성, 제냐-애플)로 설정하면서 둘의 어긋남을 흥미롭게 표현한다.

 

연출에서도 인상적인 부분이 여럿 존재한다. 우선, 호흡이 상당히 길고 정적이라는 점이다. 편집점을 예측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어도 영화는 숨을 더 들이 쉰다. 이런 긴 호흡은 관객이 감정보다는 상황에 집중하게 만들고, 나아가 인물들과의 거리감을 조성한다. 인물들 사이의 거리감도 만드는데, 가장 단적인 예시는 거울이 있는 안톤의 집이다. 실제로 안톤과 제냐의 거리는 멀지 않고 안톤은 제냐를 바라보고 있지만, 관객은 반대 방향을 보는 안톤과 거울에 비친 제냐의 상을 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각 등장인물들과 객관적인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제냐와 보리스가 함께 있는 장면보다 서로의 연인들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을 더 길게 보여준다. 영화는 특히나 집요할 만큼 육체적 관계에 집중한다. 외도 중인 부부가 각자의 새 연인과 섹스를 하는 두 번의 장면은 지나칠 만큼 자세하며 그 어떤 장면보다 천천히 그리고 심도 있게 접근한다. 오직 육체적인 그 순간만이 그들이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며 그것만이 전부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그 달콤함으로 알로샤를 잊은 듯 하다. 유괴나 실종의 경우 우리나라 영화라면 아이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거나, 서로를 의지하는 장면을 활용한다. 러브리스에서의 부모는 달랐다. 알로샤를 찾아줄 수 있는 민간구호단체의 자원봉사자를 믿을 뿐이다. 심지어 알로샤가 찾아올 집이 아닌, 각자의 연인의 집에서 자기도 한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지만 가정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알로샤를 찾는 보리스, 걱정은 되지만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한 제냐의 모습을 보게 된다.

 

러시아 국민이 고통받는 것에 무관심하고, 오로지 장기 집권에만 열중하고 있는 푸틴 정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는 평을 읽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 우크라이나 내전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데, 어쩌면 사랑 없는 가정의 알로샤가 암울한 러시아가 아니었을까. 결국 아이는 찾지 못했고 제냐는 안톤과 새 생활을 시작했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 장면, 제냐는 가슴에 러시아가 새겨진 체육복을 입고 러닝머신에서 달리다가 멈춘다. 나는 감독이 이것이 지금의 러시아다, 우리의 현 주소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물론 감독은 러브리스에서 러시아의 정치적 문제를 드러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저 영화의 배경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국가를 비판해보자는 마음으로 시나리오에 임하지 않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이라고 말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동료, 친구, 부부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힘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해관계라는 점을 감독은 날카롭게 질타한다. 한순간에 타오르는 감정은 아련한 추억의 대상으로 남아버리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인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아닌 다른 많은 구실로 관계를 유지하고 커뮤니티를 지탱할 수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사랑은 남아있는가? 사랑은 이제 사치스러운 감정으로 전략해버린 걸까. 감독은 사실적인 전개로 영화를 끝맺음으로써 그 질문의 답을 하는 것 같다.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너무 잔인한 결말이라서가 아닌 딱히 그것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리게 다가온다.

 

우리는 타인을 단지 수단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죠.

사랑을 흉내 내면서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거짓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생존을 위한 투쟁만 한다면 진정한 사랑에 영영 닿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기적인 자아는 자신만을 위해서 싸울테니까요.

저는 그런 것들이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어쩌면 전부 그런 것들일 테니까요.

 

안드레이 즈바이긴쳬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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